새해맞이 달집태우기, 삼척 정월대보름제 – 지역별 소규모 축제

음력 1월 15일, 한국에서는 정월대보름이라 불리는 특별한 명절을 맞이한다.
그저 오곡밥 먹고 부럼을 깨는 날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삼척에서의 정월대보름은 전혀 다르다.
이곳에선 ‘정월대보름제’가 열린다. 매년 불이 하늘로 치솟고, 북소리가 골목을 울리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나선다.
삼척 정월대보름제는 농경문화, 민속신앙, 공동체 의식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문화 현장이다. 지역 공동체가 세대를 이어 전승해 온 축제이며, 한국에서 ‘대보름’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축제에서는 달맞이, 달집태우기, 풍물놀이, 지신밟기, 마을굿, 전통 세시음식까지

모든 것이 ‘사람과 자연의 조화’라는 철학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시에서 대보름이 점점 ‘조용한 명절’이 되어가는 요즘,
삼척의 정월대보름은 오히려 그 전통의 불씨를 지키며 사람, 불, 음악, 의식이 어우러진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삼척 정월대보름제의 뿌리는 삼척 지역의 마을 신앙, 농경 의례, 공동체 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로부터 이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한 해의 첫 ‘진짜 시작’으로 여겼다.
설이 가족 중심의 명절이라면, 대보름은 ‘마을 전체의 새해’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대보름날이 되면, 뒷산에 올라 달집을 세우고, 온 마을이 함께 그 불을 올리며 하늘에 빌었다.

이때 빌었던 것은 개인의 복이 아닌, "마을의 무사와 풍년, 액운 소멸"이었다.
지금도 삼척에서는 마을별로 지신밟기, 다리밟기, 동제, 액막이굿 등이 남아 있고,
이런 전통이 정월대보름제에 그대로 녹아 있다.

 

 

주요 행사 프로그램

삼척 정월대보름제는 보통 음력 1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열리며,
아래와 같은 풍성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전통 민속의례 & 마을굿

• 지신밟기: 마을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액운을 쫓고 복을 부르는 의식
• 액막이굿: 대보름 전날, 마을 공동제를 지내며 나쁜 기운을 걷어내는 행사
• 고싸움, 줄다리기, 전통 연날리기 등 세시풍속 전시와 체험 진행

  참여형 프로그램

• 달집태우기: 대형 달집(건초 더미와 소나무 가지로 만든 탑)을 점화하며 소원 성취 기원
• 달맞이 퍼포먼스: 해넘이와 동시에 달이 떠오르는 순간 기원문 낭독
• 오곡밥 체험, 귀밝이술 나눔

   예술 공연 및 퍼레이드

• 지역 예술단 초청공연 (삼척민속예술단, 태백농악 등)
• 삼척풍물대행진: 시가행 진식의 대규모 북·꽹과리 퍼레이드
• 전통 의상 플래시몹, 마을 어린이 풍물패 공연

   불꽃쇼와 야간 행사

• 달집 점화식 후 대형 불꽃놀이 진행
• 불의 길(횃불 퍼포먼스): 어둠 속에 불꽃들이 강변을 따라 이동하며 연출
• LED 조형물 포토존 운영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관광객의 참여를 중심에 두고 있어,
단순히 ‘보는 축제’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로 평가받는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체험 존

아이들에게 정월 대보름은 ‘무의미한 명절’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삼척 정월대보름제에서는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명절 교육이 가능하다.

• 부럼 깨기 체험존
• 달집에 소원쓰기 체험
• 아이풍물패 공연
• 한복 입고 사진 촬영 부스
• 세시 음식 만들기 교실

먹거리

축제장 한쪽에는 항상 ‘오곡밥 나눔 부스’가 있다.
콩, 팥, 찹쌀, 차조, 기장으로 지은 따끈한 밥 위에 나물 세 가지를 얹고,
달걀지단을 올려주는 전통 스타일 오곡밥은 누구나 무료로 나눠 먹을 수 있다.

또한, 귀밝이술 시음 코너에서는 따뜻하게 데운 쌀막걸리를 한 잔씩 따라주는데,
그걸 마시고 나면 “올해는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는 말이 전해진다.

현장에서 맛본 메밀전, 동부묵, 감자떡도 참 좋았다.
무언가 특별하지는 않지만, 지역 사람들이 직접 만든 그 손맛이 잊히지 않았다.

 

여행 팁 요약 – 실전 체크리스트

달집 점화 시간: 보통 오후 7시 30분경
도착 시간 추천: 오후 5시 이전 도착 → 저녁 먹고 공연 관람
주차: 삼척문화예술회관 or 시청 주차장 활용
현장에선 현금 소지 추천 (일부 먹거리 코너는 카드 미지원)

 

교통 및 숙소

삼척은 교통 접근성이 꽤 좋은 편이다.

• 자가용: 서울 → 동해고속도로 → 삼척 IC (약 3시간 30분)
• 버스: 동서울터미널 → 삼척 고속버스터미널 (약 3시간 40분)
• 기차: 동해역 하차 후 버스로 20분 내외 이동

축제장은 보통 삼척 시내 중심 광장, 오십천 강변, 오십천 체육공원 부근에서 진행되므로,
삼척 터미널 근처 숙소를 잡으면 도보 이동도 충분히 가능하다.

숙소는 호텔보다는 지역 민박이나 한옥스테이가 축제 분위기와 더 어울린다.
특히 전통찜질방이 있는 숙소도 있어, 밤늦게 불꽃놀이를 보고 피곤한 몸을 풀기 좋다.

 

강원도 소규모 축제, 삼척 정월대보름 후기 

삼척 대보름제를 처음 찾았던 해는,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밤 7시, 강변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대형 달집이 세워져 있었다.
그 앞에서 누군가는 손을 모아 기도했고, 어떤 아이는 종이에 소원을 쓰고 있었다.

달이 뜨기 시작하고, 달집에 불이 붙자 모든 소음이 사라졌다.
불길은 점점 거세졌고, 고요한 밤하늘을 향해 붉은 기둥처럼 타올랐다.

계획, 걱정, 미련…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불에 녹는 듯했다.

누군가는 이 축제를 민속 이벤트로만 본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 축제가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강한 정서적 경험임을 확실히 느꼈다.
불은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태우는 의식이었다.

 

삼척 정월대보름제를 직접 경험한 이후,
나는 겨울이라는 계절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눈과 얼음, 어둠과 침묵이 모든 걸 덮을 때, 사람들은 ‘불’을 선택한다.
정월대보름제에서의 불은 단지 따뜻함이 아니라, 모든 나쁜 기운을 태우고 새로운 시작을 여는 상징이다.

이 축제는 마을과 가족, 나와 세상 사이를 다시 연결해 준다.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고, 이름을 묻고, 웃으며 북을 치는 풍경은
지금 시대에서 보기 드문 인간적인 장면이다.

삼척의 불은 단순한 축제의 불이 아니다.
그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원초적 감정과 기억을 태워주고,
새로운 한 해를 깨끗하게 비워주는 의식의 불이다.